강화군 장학회 장학금과 4년의 대학생활

이승환
인천 강화군 송해면
취업준비생
어느 부모나 자식이라면 한번쯤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다. 대학진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걱정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부모님 세대엔 대학진학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대학을 진학한다는 것 자체로도 큰 배움이 되는, 경력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70% 정도에 달할 정도로 '대학을 가야한다'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럴때 보통 가장 크게하는 걱정이 경제적인 부분이다.
비싼 등록금과, 타지에서 생활하게 될 경우 생활비가 부담될 것이다. 등록금의 일부를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준에 따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지원을 받는다 해서 크게 부담을 덜어주기엔 어려움이 있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이러한 상황을 겪었고, 부담되는 등록금과 생활비에 대한 부담을 안고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곳에서 지낼 방을 알아봐야 했고, 등록금 내야 했지만, 대학생 둘을 둔 부모님에게 이 생활비와 등록금은 너무 큰 무게라고 생각하여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에 학교 기숙사와 강화장학관에 대해 알아보고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고, 운이 좋게 장학관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장학관에서 지낼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말엔 의미가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에게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안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덜어주었던 장학관에서의 생활이 나의 대학생 초기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강화군장학금을 신청하였지만 아쉽게 떨어지게 된다. 그때 나는 '군대를 다녀온 뒤엔 꼭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녀야한다' 라고 생각했다.
복학을 하고 첫 학기 나는 과 수석을 하게 되었고, 강화군장학금을 신청했다. 이후 총 2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면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장학금은 나에게 목표이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제도였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생활비에 사용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지원받아 그 돈으로 생활비에 보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장학금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는 대학생활 4년동안 장학관에서 2년 동안 지냈고, 이후 3,4학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면서 대학교를 다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제도와 장학관운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게 되었던것 같다.
하지만 어두운 이야기도 들린다. 한 지역신문에서 장학회 문제가 거론된 후 75억 원의 군이 출연한 장학기금이 다시 반환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장학회가 계속 운영될지도 불투명하다는 소문이다. 장학금과 장학관이 없어진다면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제적 문제로 서울에서 학교 다니기는 한층 더 어려울 것이다. 부모님의 부담도 늘어날 것이다. 서울의 방 값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인재육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장학제도에 큰 감사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장학제도가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후배들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지속되길 바란다.
취업해 사회에 나가면 나에게 장학 혜택을 준 고향 강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군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강화군 장학회 장학금과 4년의 대학생활
이승환
인천 강화군 송해면
취업준비생
어느 부모나 자식이라면 한번쯤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다. 대학진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걱정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부모님 세대엔 대학진학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대학을 진학한다는 것 자체로도 큰 배움이 되는, 경력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70% 정도에 달할 정도로 '대학을 가야한다'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럴때 보통 가장 크게하는 걱정이 경제적인 부분이다.
비싼 등록금과, 타지에서 생활하게 될 경우 생활비가 부담될 것이다. 등록금의 일부를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준에 따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지원을 받는다 해서 크게 부담을 덜어주기엔 어려움이 있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이러한 상황을 겪었고, 부담되는 등록금과 생활비에 대한 부담을 안고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곳에서 지낼 방을 알아봐야 했고, 등록금 내야 했지만, 대학생 둘을 둔 부모님에게 이 생활비와 등록금은 너무 큰 무게라고 생각하여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에 학교 기숙사와 강화장학관에 대해 알아보고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고, 운이 좋게 장학관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장학관에서 지낼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말엔 의미가 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에게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안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덜어주었던 장학관에서의 생활이 나의 대학생 초기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강화군장학금을 신청하였지만 아쉽게 떨어지게 된다. 그때 나는 '군대를 다녀온 뒤엔 꼭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녀야한다' 라고 생각했다.
복학을 하고 첫 학기 나는 과 수석을 하게 되었고, 강화군장학금을 신청했다. 이후 총 2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면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장학금은 나에게 목표이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좋은 제도였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생활비에 사용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지원받아 그 돈으로 생활비에 보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장학금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는 대학생활 4년동안 장학관에서 2년 동안 지냈고, 이후 3,4학년 동안 장학금을 지원받으면서 대학교를 다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제도와 장학관운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게 되었던것 같다.
하지만 어두운 이야기도 들린다. 한 지역신문에서 장학회 문제가 거론된 후 75억 원의 군이 출연한 장학기금이 다시 반환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장학회가 계속 운영될지도 불투명하다는 소문이다. 장학금과 장학관이 없어진다면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제적 문제로 서울에서 학교 다니기는 한층 더 어려울 것이다. 부모님의 부담도 늘어날 것이다. 서울의 방 값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인재육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장학제도에 큰 감사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장학제도가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후배들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지속되길 바란다.
취업해 사회에 나가면 나에게 장학 혜택을 준 고향 강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군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